Kim, Jongku

김종구 (b.1963)

Chelsea College of Art & Design, M.A., 졸업, 런던

서울대학교 대학원 조각 전공 졸업, 서울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졸업, 서울


개인전

2016 사이렌 산수 신미술관, 서울

2016 세르지오사라 김종구 ICEBERG IRONBERG, 갤러리 FM, 서울

2016 ‘통쇠와 글씨’ 스트리트 뮤지엄, 서울

2015 ‘쇳가루 산수화’ 아미미술관, 당진

2014 ‘형태를 잃어버렸어요’,-쇳가루산수화 김종영 미술관, 서울

이외 다수


주요단체전

2016 ‘안녕! 생명의 비약’ Normadic Imagination #4, 현대미술연구소&아트스페이스 펄, 대구

김세중 조각상 30주년 기념전, 열린문화공간 예술의기쁨, 서울

궁중문화축전 덕수궁 속의 현대미술 ‘궁전/宮殿/궁展, 덕수궁, 서울

‘ARITHMETIC’ 세움아트스페이스 설립 1주년 기획, 세움 아트스페이스, 서울

제2회 어포더블 아트페어, 서울

2015 길 위에 공간 JCC 아트센터,

현대자동차 Brilliant Memories, 동대문DDP, 서울

MOMENTUM : ART/OMI 1997~2104,  토탈미술관,서울

‘어느’의 지시성, 자하미술관, 서울

철이철철, 포스코미술관, 서울

몽중애상·삼색도, 자하미술관, 서울

태화강 국제설치미술제, 태화강대공원, 울산

Here and There ”출향작가 초대 展, 아미미술관, 당진

철이철철, 포스코갤러리, 포항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이후, 환기미술관, 서울

김종영과 그의 빛, 김종영미술관, 서울

2015 강정 대구현대미술제 ’강정,가까이 그리고 멀리서’, 디아크광장, 대구

Interweaving, 아트스페이스펄, 대구

불각의 아름다움, 조각가 김종영과 그 시대, 경남도립미술관, 창원

울산 한글 문화예술제, 외솔기념관, 울산

 ‘마나오 투파파우’ 모란 미술관, 경기

이외 다수


레지던스

2002-03 P.S.-1 International Studio Program(MoMA) 참가, 뉴욕

2000 Art Omi Residence Program 참가, 오마이, 미국

2007 Chateau de Grand Jardin, 프랑스

2004-05 국립 고양 미술스튜디오, 한국

2007-10 양주시 조각 스튜디오, 한국


수상, 작가선정

2002 김세중 청년 조각상

1990 대한민국 미술대전 대상,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중앙미술대전 특선, 호암갤러리, 서울

서울 현대조각 공모전 특선, 서울갤러리, 서울

1989 중앙미술대전 특선, 호암갤러리, 서울

1987 전국대학미전 대상,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2008 한국 문화예술위원회 중국 전시 지원

2007 프랑스 문부성 초청 Residence Art Center/ Le Grand Jardin

2006 한국 문화예술위원회 독일 전시 지원

2002-2005 한국 문화예술위원회 전시 지원

2005 예술원 우수예술인 지원 수상


작품소장

국립현대미술관

스펜서미술관, 미국

서울시립미술관

포시즌스호텔서울

경기도 미술관

한국문예진흥원

장흥조각공원

광안리해수욕장

부산올림픽조각공원

당진화력발전소

싱가폴비지니스센터, 싱가폴

인천송도국제도시

대림피에스타

농협하나로빌딩

고잔역사벽화제작

김해금옥교제작

Review

하늘 우물, 낮은 주름

김종구의 조형미학 톺아보기


김종길 | 미술평론가


김종구의 조형미학은 2년 전 김종영미술관(서울)에서의 전시와 올해 신미술관(청주)의 전시로 어떤 전환의 상황에 직면한 듯하다. 그는 ‘쇠 조각’을 도둑맞은 뒤 스스로를 ‘조각가:Sculptor’에서 ‘전 조각가:Ex-Sculptor’로 명명했고, 쇠 조각의 흔적으로 남은 쇳가루에서 ‘조각이란 무엇인가?’를 근원에서부터 다시 재사유하는, 이미지 형상의 다차원적 실험들과 퍼포먼스를 수행해 왔다. 역설적으로 이런 그의 수행적 미학 태도는 근대이후 한국 미술계가 지나칠 정도로 경도되었던 ‘서구미학(西學)=캐논(canon)’의 구도를 뒤흔드는 사건이라는 생각이다. 물론 그가 일으키는 사건의 파장이 한국 미술계 혹은 동양미학(東學) 전체를 전복시키거나 그런 맥락에서 모두가 합의하는 수준의 ‘동일적 사건’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은 아니나, 분명히 그의 새로운 조형미학은 문제적 사건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사건의 실체는 무엇일까? 무엇이 그의 미학을 사건으로 만든 것일까?


2년 전 김종구는 김종영미술관에서 <형태를 잃어버렸어요-쇳가루 산수화>전을 개최했다. 김종영미술관이 ‘2014 오늘의 작가’로 선정해서 기획한 전시였다. 그는 제1전시실에 <쇳가루 6000자 독백>을 설치했다. 980×270센티미터 크기 4개의 대형캔버스를 천장에 매단 것이 그것이다. 캔버스 두 개를 한 쌍으로 그는 거기에 각각 3000자씩의 비망록을 쇳가루 글씨로 적었다. 그 외에도 CCTV카메라로 쇳가루 글의 단면을 찍어서 실시간으로 벽면에 투사한 영상과 큐브 박스 내에서 통쇠를 깎는 퍼포먼스 설치도 있었다. 이 전시로부터 사건의 단서를 쫓아보자.


-조각적 서화 조형론


김종구의 조각에서 ‘조각’을 지우면 어떻게 될까? 또 그의 캔버스 문장에서 ‘글씨’를 지운다면? 그의 조각과 글씨를 지운 흔적들 사이에서 아마도 우리는 무수한 그림자들만 읽게 될 것이다. 형(形)과 영(影)이 구분될 수는 없을 터이나, 형을 지우고 영이 남은 그 자리에 우리 근대 미학이 세우지 못한 동서융합의 서화 조형론을 세워보자. 김종구의 쇳 가루 미학이 떠오르지 않는가? 백년을 돌아서 미래의 과거를 세우는 오늘의 우물 자리는 김종구의 예술론이 터트린 황홀한 미리내의 별꽃과 유사하리라. 나는 그것을 감히 21세기의 동학이 서학과 마주하는 수평적 근대라 말하고 싶다. 동도서기(東道西器)와 서도동기(西道東器)가 한 판에서 어울리는 혜안의 심미안으로서.수평적 근대의 표정에서는 캔버스와 한지, 붓과 먹을 구분할 수 없고, 공기원근과 색채학, 남종화/북종화, 서양화/한국화, 필법과 마티에르의 차이를 따지지 않는다. 형을 지우듯이 형식을 지우고, 새것을 찾듯이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다. 서학(西學)과 동학(東學)이 서로 도(道)를 찾고 서로 기(器)를 찾아 여기에 이르렀듯이, 이곳의 도와 기는 이제 서학도 동학도 균형을 잃지 않는 것이다. 김종구의 예술론은 수평적 근대의 바로 그 균형에 있을 것이다.


김종구의 쇳가루 조형론은 19세기 근대의 서학적 미술론을 21세기 동학적 서화론(書畵論)으로 뒤집는 곳에 위치한다. 한 마디로 서학을 뒤집어서 동학을 끄집어 낸 형국이랄까? 1백년이 넘도록 서학은 너무나 압도적이어서 동학의 실체조차 찾을 수 없었다. 서학에서의 근대조각 개념이 동학에서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상기하면 이것은 매우 놀라운 사건이다. 조각이 ‘非-조각(ex-sculpture)’이 되는 사건! ‘非-조각’이 서(書)와 화(畵)의 서화(書畵)로 둔갑하는 사건! 이것은 마치 근대조각가 김복진의 발가벗은 첫 여체조각들이 1920년대의 조선에서 경악스러움의 정치 윤리적 사건으로 이해되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김종구의 非-조각적 서화 조형론을 새로운 사건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일까?


김종구의 쇳가루 조각(이것을 굳이 ‘조각’이라고 말해야 하는지도 의문이다!)은 다시 강조하건데, 서학에의 동학적 전복이다. ‘비-균형’을 균형으로 바꾸는 전복. 서구의 근대 조형론이 ‘몸(形)’이라는 창조적 형상론에 집착했다면, 그는 몸을 텅 비운 자리에 남은 탈각된 몸의 ‘흩어짐(影)’에 주목했다. 빈탕의 허(虛)다. 만들어서 제작하는 형상이라는 물적 토대의 3차원적 조각에서 물적 토대가 사라지고 흩어진 그림자로서의 ‘쇳가루’를 발견한 것이다. 형상은 없고 그림자로만 남은 쇳가루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자, 바로 여기에 의미전복의 새로운 동학적 사유가 넘실댄다.


형상 이전의 원형상으로서의 통쇠는 석도(石濤: 1641~1720?)가 일획장(一劃章)에서 크게 외쳤던 큰 통나무와 다르지 않다. 통쇠/통나무 자체로는 법도 없고 흩어지지도 않는다. 통쇠/통나무가 한번 흩어지면 ‘미(美-書畵-法)’가 세워진다. 한번 흩어진 것만으로 미가 세워졌으니 그의 쇳가루는 그 자체로 법이라 할 수 있다. 한번 흩어짐, 이미 거기에 미의 우물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 우물에서 길어 올린 쇳가루 덩어리와 쇳가루 글의 문장과 문장들의 쇳가루 산수는 미의 우물에서 이어진 유법(有法: 無法이 미학이라면 유법은 예술의 실체다)의 한 양상일 따름이다. 그리고 미를 세운 곳, 우물이 샘솟는 곳에 그림자 김종구가 있을 터!석도화론의 일획장(一劃章)을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太古에는 法이 없었다. 太朴은 散하지 않는다. 太朴이 한번 散하니 法이 立한다.

法은 어디에서 立하는가? 一劃에서 立한다.

一劃이라 하는 것은 衆有의 本이요, 萬象의 根이니, (그것은) 用을 神에게 드러내고, 用을 人에게는 숨기니 世人들이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러므로 一劃의 法은 곧 我로부터 立한다.

一劃의 法을 立하는 자는 대저 無法으로써 有法을 生하고, 有法으로써 衆法을 貫한다.

太古無法, 太朴不散, 太朴一散, 而法立矣.

法於何立? 立於一劃.

一劃者, 衆有之本, 萬象之根, 見用於神, 藏用於人, 而世人不知.

所以一劃之法, 乃自我立.

立一劃之法者, 蓋以無法生有法, 以有法貫衆法也.


한번 그음의 한번 몸짓


통쇠를 깎는다. 한번 그음이다. 통쇠가 사라진 자리에 쇳가루가 쌓인다. 한번 몸짓의 결과다. 쇳가루로 미를 세운다. 한번 그음과 한번 몸짓이 곧 미학(法)이 되는 것이다. 깎아서 쌓이고 세우는 세 문장이 섰다가 흐르는 사이사이에 김종구의 쇳가루 산하(山下)가 펼쳐진다. 그의 산하는 총체로서의 미학적 조형이며 문장이자 풍경이고 철학이다. 시간과 공간을 나눌 수 없는 그의 전시장은, 아니 시공간이 맞붙어서 물결치듯 흘러가는 전시장은 그래서 ‘전시’라는 완결된 형식으로 귀결되지 않는다. 관객은 그 흐름의 사이를 유영할 뿐이다.


통쇠는 통쇠로서 본래 흩어진 바 없고 스스로 맺혀진 바도 없으나 그 쓰임(用)이 있어 드러났다. 드러나기 전의 통쇠는 고대 자연철학이 사유했던 것처럼 그것은 (쇠라는) 경험이 아니라 (자연이라는) 추상적 사고에 불과했다. 통쇠는 쇠가 아니라 자연이라 부르는 - 동서양의 고대인들은 자연을 인식의 바깥에 둠으로써 자연학의 철학을 입론했다. 자연철학자들은 바깥의 자연을 ‘부름’으로써 사유했다 - 사유체계의 빈 공유지였다. 아직 알려져 있지 않은 현실로서의 자연을 불러 사상(思想)의 형태로 공유지를 채우는 것이 철학적 사유의 한 방법이었던 셈이다. 그러므로 쇠는 통일적 자연 세계의 한 원소로서만 존재했다.


김종구는 아무런 형상이 가해지기 이전의 순수한 질료로서의 통쇠를 만나기 전까지 쇠를 경험으로 인식했다. 그가 쇠를 도둑맞기 전에 작업했던 작품들은 돌이나 나무를 깎아서(혹은 덜어내서) 형상을 만드는 것이었다. 미켈란젤로 이후 조각가들이 품었던 원 질료 속의 내재적 형상에 대한 탐구라고 해야 할 것이다. 조각이 추구해 온 그런 형상에 대한 보편적 집착은 김종구의 초기 조각에서도 하나의 진리였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로댕이든 부랑쿠지든, 김복진이든 송영수든 근대조각이 높은 수준의 조형미로 완성하고자 했던 조각적 형상화의 신화이자 열망이며, 고통이기도 했다.


마르셀 뒤샹의 변기처럼 때때로 미학적 깨우침은 느닷없이 터진다. 원효가 동굴 속 무덤에서 진리를 깨우쳤듯이 김종구의 깨우침도 도둑처럼 찾아들었다. 그는 통쇠를 깎아 만든 인체조각을 도난당함으로써 형상화의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역설이다. 도둑맞은 자리에서 도둑처럼 찾아든 것이 그의 깨달음일 터인데, 그 핵심이 도둑맞은 형상의 부재, 즉 빈 공유지에 남은 흔적으로서의 쇳가루였다는 사실이.


깎아서 덜어낸 뒤에 남는 실존적 뼈대로서의 응축 형상이 아니라, 그 형상이 빠져나간 자리, 그러니까 실존이 흩어진 자리를 겉도는 그림자들이 그에게 들어왔던 것이다. 마치 몫 없는 것들의 잔해라고 밖에는 할 수 없는 것들이, 깎아낸 것들/덜어낸 바로 그것들이 새로운 형상의 주인이 되는 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추상적 사고에 불과했던 쇳가루가 경험의 구체적 조형성으로 재탄생하는 순간의 미학적 혁명! 근대 서구 조각론이 석도화론으로 뒤집히는 21세기의 역성혁명!


새싹 돋는 문장들


김종구의 통쇠는 석도의 통나무다. 통나무 즉 통쇠는 어떠한 형상(eidos)도 시작되기 이전의 질료(hyle)다. 다시 말해 통쇠는 형상이 드러나기 전의 본래적 성질로 존재하는 순수질료인 것이다. 그러나 그 질료(통쇠)가 김종구의 손에 들어가는 순간 하나의 가능태(potentiality)가 될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두나미스(dunamis:권능)라고 부르게 될 것이다. 석도화론의 일획장에서 바로 이 부분을 도올은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통나무는 흩어지는 행위를 통해서만 ‘이름(=분별)’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 三十二章에 말하기를, ‘始制有名’(처음에 制하여 비로소 名이 있게 되었다). 여기서 ‘制’란 칼刀변이 들어가 있듯이 ‘짜름’즉 ‘分析’의 의미다. ‘짜름’은 ‘흩음’이요, 흩음은 곧 名의 생성을 의미하며 분별된 인간의 인식의 성립을 의미하는 것이다.”


통쇠를 깎는 행위로서의 ‘짜름’과 ‘흩음’의 미학은 그가 전시장 내에 사각 큐브의 방음방을 짓고 그곳에서 직접 5시간씩 수행한 그라인딩 프로젝트에서 하나의 절정을 이룬다. 이미 17년 전의 일이지만 그의 ‘깎기’로서의 행위는 아주 근원적인 ‘미술하기’의 미학에 대해 질문을 던진 것이었다. 우주복을 연상시키는 특수 작업복을 입고 방음방으로 들어가서 불꽃을 튀기며 그라인드에 몰두하는 장면은 통쇠라는 에이도스조차 완전히 해체되어서 질료의 가능태마저 형성시키지 못하는 극단적 미학에의 도전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화론/미학을 세우는 것의 의미조차 무의미로 되돌리려는, 즉 무법에서 유법의 창조적 상관관계를 인위로서 무너뜨리려는 엄청난 강밀도의 통쇠 깎기라고 해야 할까? 관객은 밖에서 내부의 강밀도 수행을 통렬하고 잔혹한 쇠 불꽃으로 확인하겠지만, 결과적으로 그 수행의 끝에서 재확인하는 것은 유법/인위가 남긴 무법의 무위일 수밖에 없다. 통쇠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쇳가루만 남아서 떠돌기 때문이다. 어쩌면 조형이라는 최초의 미학적 본성은 그렇게 시작되었을지 모른다. 김종구는 본성으로서의 두나미스에 이르는 그 과정을 수행하면서 그 본성이 ‘시제유명(始制有名:만물에 이름이 생기는 것)’을 얻는 체험을 한 듯하다. 통쇠 밑으로 흩어진 쇳가루들이 문자로 ‘흩어지면서(=문자라는 名이 생겨나면서)’ 분별을 이루기 시작했으니까.


나는 그 분별의 이름에서 불현 듯 박노해를 떠올렸다. 박노해의 「강철 새잎」을. 통쇠가 문자로 흩어지는 것은 통쇠가 새잎을 얻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새잎을 틔우는 것은 또한 시어가 터지는 것과 다르지 않으며, 그 시어들이 사유의 문장들로 흘러가는 것과 같을 것이다 ; 썩어가는 것들 크게 썩은 위에서/ 분노처럼 불끈불끈 새싹 돋는구나/ 부드러운 만큼 강하고 여린 만큼 우람하게/ 오 눈부신 강철 새잎.

새잎이 돋는 곳에 새 땅이 있다. 그가 쇳가루들이 모여서 산을 이룬 곳에 카메라를 설치한 것은 문장의 깊이가 하나의 거대한 대지를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한 뒤였다. 하, 이것을 우리는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한번 흩어지기 시작한 미의 우물에서 미르의 용솟음이 발끈거린다.


문장의 그늘에서 서화를 잊기


통쇠의 단면은 점이다. 그것이 누우면 땅이고 서면 하늘이다. 문자/말의 모음구조다. 통쇠가 흩어진 곳에서 글이 터졌다가 뭉개졌다가 쌓였다가 길게 선이 되고, 선이 되고, 되고 하면서 물이 되고, 물이 되고, 되고 하면서 면이 되는 화면들. 대지들. 흩어지면 아무 것도 아닌 바로 그것들. 그것들의 무수한 수다! 아에이오우. 옴. 옴. 옴.


그 사이, 김종구가 사유해 온 과정들에서 나는 추사의 <세한도>(2005)를 발견한다. <세한도> 따라 하기의 ‘그리기’는 흩어짐의 쇳가루를 철학적으로 사유하려는 그의 미학적 구상이, 다시 근대미술로 회귀해 버릴 수 있는 위험수위를 노출한다. 흩어진 것들이 ‘그리기’의 형상화를 향하는 순간 애초의 에이도스나 두나미스의 순수성을 상실할 수 있다. 원질료는 늘 어떤 형상으로 이끌리는 욕망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특히 근대 미학의 욕망은 예술가의 열정을 부추겨 과도한 도전으로 나아가게 하는 ‘창조의 그늘’을 가지고 있지 아니한가!


<세한도>를 보면서 나는 그의 욕망이 쉽게 내부의 욕망과 타협하고 있는 장면을 상상했다. 그는 쇳가루로 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의 이미지에 집착한 것이 아닐까? 2006년의 <Steel Powder painting>은 쓰고 흩트리고 기울이고 붙이고 흘러내리도록 하면서 쇳가루가 아닌 쇳가루라는 먹 붓의 유희적 유연성을 실험하는 과정을 노출한다. 이것은 비-조각적 서화 조형론이 아니라 그저 서화로의 회귀일 수 있다. 캔버스와 붓을 한지와 먹으로 인식하려는 오류!


그러나 나는 <형태를 잃어 버렸어요>에서의 그의 조형론이 동회귀선(서학을 제거한 동학으로의 회귀)에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의 실험이 한 때 동학에 치중했으나 서학의 수평을 놓지 않음으로써 드넓은 초원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쇳가루 6000자 독백>은 그가 보여주는 최고의 생성체이자 휠레이며, 새잎이었으니까 말이다. 전시공간을 에둘러서 앞과 뒤를 보여주는 이 거대한 쇳가루는 그것으로 대지의 무한한 확장성을 증거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확장성이 이번 신미술관에서 명확하게 둘둘 접혔다가 펼쳐지는 대지의 미학으로 생성되었다.


이번 전시를 위해 그는 과거 절첩식 구조의 형태를 가진 드로잉북에 전시 설치를 위한 구상을 구체화 했다. 아주 흥미롭게도 그것은 대동여지도의 절첩구조와 비슷했다. 대동여지도는 접어놓으면 한 권의 책이지만, 그것을 펼치면 7미터의 거대한 한반도 지도가 된다. 고산자 김정호의 머릿속에는 대지를 상상하는 방식이 그렇게 접혔다가 거대하게 펼쳐지는 확장적 세계로 가득할 것이다. 김종구의 작품들은 때때로 펼쳐진 대지에 쇳가루를 쌓아서 입체적 ‘산수’(山水)를 볼 수 있도록 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단지 설치적 상황으로서가 아니라, 개념적 수평의 확장선이 주제가 되었다. 대지적 상상력이 구체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몽골이 팍스 몽골리카를 세웠던 1천 년 전, 바얀골 초원의 카라코룸(Karakorum:검은 숲길)에 섰던 적이 있었다. 유럽에서 동아시아까지 하나의 제국을 형성했던 몽골은 오롯이 초원으로만 존재했다. 초원에 펼쳐진 몇 개의 선들이 실핏줄처럼 이어져서 서와 동의 두 세계를 마주하게 했다. 이쪽에서 저쪽을 보면 그러나 초원의 대지는 무수한 언덕과 산과 물들로 펼쳐지는 낮은 주름들이기도 했다.


김종구의 ‘독백’은 마치 초원에서 울려 퍼지는 한 목소리 두 음율처럼 아름다웠다. 문장이 있으나 문장의 그늘로서 문장이 돋고, 서화가 있으나 서화를 잊은 곳에서 움튼 쇳가루들. 그것들은 초원의 풍경처럼 낮은 주름들로 가득했다. 나는 눕지 않고 서서 그의 회화가 보여주는 주름들의 평원을 내달렸다. 내 시선은 화면의 정면이 아니라 면의 옆에 있었으니까. 그리고 신미술관 3층 전시실에서 나는 낮게, 더 낮게 대지의 주름으로 펼쳐진 광야에서 홀로 세속과 싸우는 니르바나(涅槃, Nirvana)의 실체를 발견했다. 그는 벌거벗었으나, 그의 손은 뭉툭해서 마치 권투 글로브를 쓴 것처럼 단단했다. 그리고 그 아래, 1층에서 나는, 3층의 현실계가 뒤집혀서 상상계로 건너 온 ‘하늘 우물’을 보았다.


1층 전시실 천장에 달린 거울은 거울이 아니라 3층과 이어지는 연결 통로의 상징일 것이다. 한 세계와 다른 또 한 세계가 접혀서 만나는 그 구조는 화이트홀과 블랙홀이 특이점을 가운데 두고 대칭적 구조로 만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 거울, 그 빛의 홀은 3층에서 사이렌 스팟으로 터지는 빛과 이어진다. 그렇다면 빛거울에 되비치는 1층의 작품은 무엇일까? 우물이다. 3층의 현실계가 빛거울을 통과해 1층의 우물에 어린 것이다. 그런데 ‘어린’ 산수풍경은 희미하게 비쳐서 어린 것이기에 바람이 불면 금방이라도 흩어져 버릴 수 있다. 생각해 보라! 우물에 어려 있는 풍경을.


바람의 풍경은 현실계의 ‘나’를 끝없는 광야로 내달리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그 광야에 선 ‘나’의 등 뒤에서는 아수라 같은 현실의 ‘사이렌’이 끝없이 울려 퍼질 것이다. 그러나 그 사이렌은 거칠게 찢어지는 사운드가 아니라 빛이었다. 나는 그 빛의 사이렌이 이번 전시의 감추어진 중핵이 아닐까 생각한다. 쇠를 갈아낼 때 불꽃이 솟구치듯이, 빛은 하늘 우물을 관통하며 이쪽과 저쪽에서 깜박거렸다. 마치 낮은 주름에 엉겨 붙은 산수가 우물에 어렸다가 삽시간에 흩어지듯이, 산수는 사이렌 빛으로 드러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렇다면 그것은 ‘사이렌 산수’일 터인데, 그 감감한 순간들의 매혹은 잠깐 동안 드러나는 빛으로 황홀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