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k, Yungnam

박영남 (b.1949)

뉴욕시립대학교 대학원 회화과 석사, 뉴욕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학사, 서울


개인전

2014 금호미술관, 서울

2012 가나아트센터, 서울

2008 장흥아트파크, 양주  

2006 가나아트센터, 서울

2002 갤러리 현대, 서울

1999 가나아트센터, 서울

1998 신세계 가나아트, 서울

1996 갤러리 가나보부르, 파리

1995 가나화랑, 서울

1992 김수근 미술상 수상 기념전, 공간미술관, 서울

1991 가나화랑, 서울

1989 가나화랑 서울

1983 CCNY Gallery, 뉴욕

1979 고려화랑, 서울


주요단체전

2018 추상과 감흥, 박영남, 오수환, 윤명로, 롯데갤러리 월드타워점, 서울

bi – u –da : empty, 삼인전, SA+ 서울옥션 홍콩, 홍콩

2017 By Nature: 안종대, 박영남, Pearl Lam Galleries SOHO, 홍콩

2015 물성을 넘어, 여백의 세계를 찾아서-한국 현대미술의 눈과 정신 1, 가나아트센터, 서울

5인 5색, 장욱진 고택, 용인

60‘s New Vision, 이브 갤러리, 서울 

2013 자이트가이스트·시대정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한국 현대미술의 궤적, 서울대학교 미술관, 서울

Contemporary Age, 가나아트센터, 서울

2012 신소장품전,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2011 아시아 국제미술전, 경기도미술관, 안산 

2010 Final Cut, 장흥아트파크, 양주 

2008 신소장품전, 경기도미술관, 안산

2007 Friends, 갤러리 마노, 서울

Inner Landscape / I Hear Voices, 아트선재미술관, 경주

Hommage 100: 한국현대미술 1970~2007, 코리아아트센터, 부산

Collector's Choice: Collection 2, 대림미술관, 서울

2006 아뜰리에 사람들 Ⅳ: 졸업, 가나아트센터, 서울

2005 국립현대미술관 신소장품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서울시립미술대전,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9인전, 가나아트센터, 서울 

2004 신소장품전,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2003 서울미술대전,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2002 봄의 소리, 가나아트센터, 서울
한일현대미술전, 요코하마 갤러리, 요코하마

2000 Salon Grands et jeunes d’aujourd’hui, 파리
하늘과 땅 사이, 성곡미술관, 서울

1998 한국현대미술 6인전, 갤러리 가나보부르, 파리
가나아트센터 개관 기념전, 가나아트센터, 서울

1996  Aus Seoul, 슈투트가르트 시립전시관, 슈투트가르트

1995 의자, 계단 그리고 창, 환기미술관, 서울

1992 레알리떼 서울, 덕원갤러리, 서울
한국현대미술 초대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1991 앱스트랙 ’91, 갤러리 허스, 서울
한국현대미술 6인전, 프랑크하넬 갤러리, 프랑크푸르트

1990 앱스트랙 ’90, 갤러리 예향, 서울

1988 서울 올림픽 기념 한국현대미술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1984 Difference & Style, 112 Greene Street, 뉴욕

1980 포럼 7인전, 문예진흥원미술회관, 서울

1973 5인전, 미국문화원, 서울


수상
1992년 제3회 김수근 미술상

작품소장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삼성미술관, 서울
선재미술관, 경주
아라리오미술관, 천안
호텔신라, 서울, 제주
삼성의료원, 서울
한국타이어, 서울
신세계연수원, 용인
통신개발연구원, 서울
삼성용인중앙개발, 용인


1983 M.F.A., City College of New York, New York

1973 B.F.A., Seoul National University, Seoul


Selected Solo Exhibitions 

2014  Kumho Museum, Seoul (catalogue)

2012  Gana Art Center, Seoul (catalogue)

2008 Jang Heung Art Park, Yangju, Korea

2006  Gana Art Center, Seoul (catalogue)

2002 Gallery Hyundai, Seoul

1999   Gana Art Center, Seoul (catalogue)

1998 Gallery Shinsegae Gana, Seoul

1996 Galerie Gana-Beaubourg, Paris

1995 Gana Art Gallery, Seoul (catalogue)

1992 Gonggan Gallery, Seoul

1991  Gana Art Gallery, Seoul (catalogue)

1989  Gana Art Gallery, Seoul (catalogue)

1983  CCNY Gallery, New York

1979 Goryo Gallery, Seoul


Selected Group Exhibitions

2018    Abstract and Empathy, Youn Myeong Ro, Oh Su Fan, Park Yung Nam, Avenuel Art Hall, Seoul

               bi – u –da : empty, Three Men Show, SA+ Seoul Auction Hong Kong, Hong Kong

2017    By Nature: An Zong-De and Park Yung-Nam, Pearl Lam Galleries SOHO, Hong Kong

2015    Beyond Materiality, Pursuing the Realm of Vacancy-Eye and Mind of Korean

              Contemporary Art 1, Gana Art Center, Seoul

              Five Artists Show, Chang Ucchin Gotaek, Yongin, Korea

              60‘s New Vision, Eve Gallery, Seoul

2013    Zeitgeist Korea,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Seoul

              New Start 2013, Museum of the Seoul National University, Seoul

              Contemporary Age, Gana Art Center, Seoul

              3 Acts 5 Scenes, Gallery Simon, Seoul

              Homage Whanki, Whanki Museum, Seoul

2012  Healing Camp, Gana Art Center, Seoul

              New Acquisitions, Seoul Museum of Art, Seoul

              To Meet the Mercy, St. Mathew Chapel, Seongnam, Korea

2011   Asian International Show, Gyeonggi Museum of Modern Art, Ansan, Korea

              Minor Aesthetics, Artuser Gallery, Seoul

2010    Final Cut, Jang Heung Art Park, Yangju, Korea

2009   Screening the Image, O’s Gallery, Jeonju, Korea

2008  THE chART, Gana Art Center, Seoul

              New Acquisitions, Gyeonggi Museum of Modern Art, Ansan, Korea

2007  Summer Collection, Gana Art Center, Seoul

              Friends, Gallery Mano, Seoul

              Inner Landscape: I Hear Voices, Art Sonje Museum, Gyeongju, Korea

              Hommage 100: Korean Contemporary Art 1970-2007, Korea Art Center, Busan

              Collector's Choice: Collection 2, Daelim Museum, Seoul

2006   Atelier-People IV: Graduation, Gana Art Center, Seoul

              Kookmin People, Brilliant Spirit, Kookmin Gallery, Seoul

2005 New Acquisitions,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Gwacheon, Korea

              Nine Artists, Gana Art Center, Seoul

              Connection: Link Project 2, Kookmin Gallery, Seoul

2004  New Acquisitions, Seoul Museum of Art, Seoul

2003   Variation for the Cross, Milal Museum, Seoul

2002   Sound of Spring, Gana Art Center, Seoul

              Korean-Japanese Contemporary Art, Yokohama Gallery, Yokohama, Japan

2000  Salon grands et jeunes d’aujourd’hui, Paris

              Between the Earth and Heaven, Sungkok Art Museum, Seoul

1998  Six Korean Contemporary Artists, Galerie Gana-Beaubourg, Paris

              Inaugural Exhibition, Gana Art Center, Seoul

1996   Aus Seoul, the City of Stuttgart Exhibitions Hall, Stuttgart

1995  Chair, Stairs and Window, Whanki Museum, Seoul

              Contemporary Art, Korea, Beijing Museum, Beijing

1994  Art and Life, Gallery Meegun, Seoul

              Six Artists, Gana Art Gallery, Seoul

              International Art Festival,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Gwacheon, Korea

1993-2005  Seoul Art Festival, Seoul Museum of Art, Seoul

1993  Gana Gallery 10th Anniversary Exhibition, Gana Art Gallery, Seoul

              Art and Religion, Seoul Arts Center Hangaram Museum, Seoul

1992  Contemporary Art of Korea,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Gwacheon, Korea

1991-92  Realité Seoul, Duckwon Gallery, Seoul

1991 Six Korean Contemporary Artists, Gallery Frank Hanel, Frankfurt

1990-94  Abstract, Gallery Yaehang; Gallery Hurrs; Gallery Yemac; Gallery 63, Seoul

1988  Commemorative Exhibition of the 24th Seoul Olympic Games: Korean Contemporary Art Festival,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Gwacheon, Korea

1984 Difference & Style, 112 Greene Street, New York

              Alumni & Faculty Show, The Aaron Davis Hall, New York

1980 Forum-7, National Cultural Center, Seoul

1973 Five Artists Show, American Culture Center, Seoul


Award

1992 Awarded from Kim Soogeun Foundation for the Arts


Collection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Seoul

Samsung Museum, Seoul

Arario Museum, Chunan, Korea

Hotel Shilla, Seoul and Cheju, Korea

Samsung Medical Center, Seoul

Shinsegae Training Institute, Yongin, Korea

Korea Information Society Development Institute, Seoul

Hankook Tire, Seoul

Samsung Everland INC, Yongin, Korea

Korea Broadcasting System, Seoul

Gap-Eul Bang Jeek, Seoul

St. Jude Hospital, Los Angeles, U.S.A.

Swarovski Collection, Austria

Office Complex of the Traders and Manufactures, Seoul

The Public Prosecutors Southern Branch office, Seoul

Songchon Catholic Church, Daejeon, Korea

New Complex of the Dong Yang Insurance co, Seoul

Hansol Resort, Moonmack, Korea

Review

순수한 광선의 신추상 페인팅


정병관

 

인간의 체취가 느껴지는 핑거페인팅

박영남의 최근 작품들은 캘리포니아의 밝고 부드러운 햇빛이 충만하고, 시원하게 트인 광활한 자연공간을 핑거페인팅 (손가락 그림기법으로 표현한 것이다. 색채와 광선이 주제인 것이나 다름없는 이 그림들은 구상과 추상으로 나누어 생각하기에는 어렵다.


사실 공기 또는 광선으로 그린다는 것 자체가 형체가 없는 추상적인 형상으로 표현할 수 바Rd[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끌로드 모네의 「밀짚더미」시리즈 그림밖에 표현된 색채로 물들여진 고아선을 보고 모네를 ‘대기의 시인’ 또는 광선의 시인이라고 칭송하였다. 모네는 수확이 끝나서 여기저기 밀짚 무더기가 있는 들풍경을 여름부터 늦가을까지, 계절과 하루의 시간이 지나가는 순간순간들을 연작으로 화폭에 담았다.


그러나 박영남의 겨우는 시간성이나 계정감등의 변화에는 그다지 민감하게 바응한 것 같지 않다. 원래, 캘리포니아 지방에는 봄․여름․가을․겨울의 구별이 거의 상춘의 나라이기 때문에, 거의 항국적으로 변화가 없는 관선과 풍성한 색채의 향연이 있을 뿐이기 때문일 것이다. 모네의 밀짚더미들은 광선효과 때문에 오브제의 속성이 상실된 사애인 것과는 달리 방영남의 그림에서는 애당초 밀짚더미 같은 오브제가 없다. 말하자면 순수하게 태양빛과 자연속의 아름다운 색채만이 관계가 있다. 순수한 광선을 추상시라고 말할 수 있는 이 그림들은 광선이라는 추상적 형태의 구체적 영상을 표현한다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추상적인 구도라고 보기보다는 광선의 구상적인 표현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신추상이라는 말을 써도 될 것 같다.


인상파적인 그림이라는 말은 광선을 표현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색채혼합을 팔레트 위에서가 아니라 화면 위에서 행한 것도 인상주의 화가들의 방법과 같기 때문이다. 화면위에서의 혼합도 붓이 아니라, 손가락에 묻힌 순색 물감들이 몇 개의 중첩된 층으로 겹쳐지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엄격하게 말하자면 병치법이나 중첩법을 사용한 것이지만 혼합 자체가 이루어지기 어려운 상황에서 작업이 진행된다고 보아야할 것이다. 손가락은 색채 혼합에 불편할 뿐만 아니라 형태모사에도 부적합하다. 자연형태거나 추상형태거나 형태, 명암 등을 세밀하게 묘사할 수 없는 손가락 사용은 자연적으로 추상적인 표현으로 그칠 수밖에 없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손가락이 남긴 자국, 지나간 자취, 빨리 뛰어나간 흔적 같은 것들은 추상형태는 아니다. 추상형태를 가진 흔적들과 인위적으로 그런 추상형태 사이에 어떤 구별이 필요한 것이지 모르겠다. 다만 박영남의 그림에서 뿐만 아니라 추상형태를 가진 사물, 나아가서는 꽃무늬 같은 형태들까지도 추상의 범주 속에 넣어 생각하는 경향이 1980년대 초에 나타난 소위 ‘패턴 페인팅’ 세대이후에 보편화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추상과 장식 사이의 불편한 관계’를 극복하려고 하며, 자연과 예술의 엄격한 구분을 무시하고 장벽을 무너뜨린 꼴라쥬 또는 레디메이드 미학에 연결되는 미학적 반항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

 

원시적 수단의 세련된 화면

인간의 형상이 없는 그림에서 어떤 인간적인 것을 느낄 수 있을 까 하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반(反)인간주의적 그림이 아니냐는 물음에 대해서 추상화가들의 대답은 화가의 개성표현으로서의 서정 추상은 오히려 너무나도 인간적이 아니냐라고 반문할 수 있다. 붓자국, 물감의 흔적 같은 것이 모두 화가의 정신과 육체의 운동이 결합되어 형성되었으므로 지나친 개성만능주의이며 과도한 주관주의의 산물이 서정추사이 아니냐고, 그리고 극단적으로는 신(神)을 대신하여 화가 자신이 창조주가 된 것 같은 환상의 산물이 아니냐고 공격하는 경우도 있다. 프랑카스텔은 끌로드 모네의 그림에서 새로운 인간주의를 보았다. 광선의 효과를 객관적으로 표현했을 뿐만 아니라, 화가의 자연에 대한 감정을 표현한 서정성이 깃든 서정적인 인상주의회화는 인간성의 새로운 표현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박영남의 핑거페인팅은 인간의 욱체가 직접 화폭 위에 작용한 그림이므로 지나친 인가의 체취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안젤름 키퍼가 인적없는 황량안 들판을 그렸지만 거기에 인간들이 피를 흘리며 싸웠던 흔적들을 상징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새로운 역사화를 그렸다고 평가받는 갓과 마찬가지로, 박영남 역시 인간형상 없는 인간주의적 그림을 그린 화가로 평가되어 마땅 할 것이다.


물론 핑거페인팅기법 그 자체는 국김학교나 유치원생들에게 적합한 l법이지만, 이 화가는 이 평범한 기법을 고차원적인 예술창조의 기법으로 격상시켰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핑거페인팅이 엄지를 Vos 나머지 네 손가락으로 그리는데 반하여, 전통적인 의미의 지두화는 한손가락 끝으로 격렬한 선(線)을 남기는 표현주의적인 기법이다. 율동적인 동선을 그으며 방향을 바꾸어가면서 화면 위에 격렬하지는 않지만 잔잔한 물결같은 출렁임이 있다. 말하자면 바로크적인 운동의 예술이다. 특히 겹쳐진 부분의 투명한 이중주와 같은 음악적 리듬감은 바로크 음악과도 유사한 경쾌한 설레임이 있다. 바로 이설레임이 인간의 생명의 움직임과 접근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다.


화면 자체의 세련된 느낌을 가지지만, 수다은 원시주의에 속한다. 그림그리느 sehrn를 발명한 문명시대에서 멀리 후퇴하여 인류가 최초로 그림을 그리기 위해 사용한 손가락만을 사용하기로 결정한 것은 모든 문화주의에 대한 반발이라고 보아야하는지, 아니면 워시주의 역시 기계문명속에 살아야할 운명이 강요된 현대인의 사치스러운 제스쳐에 불과한 것인지 누가 확답을 할 수 있겠는가. 도구는 사용하지만 그림 그 자체는 원시적으로 그리는 경우와 이 도구의 원시주의는 모두 모든 것을 최초로부터 다시 시작해봄으로써 예술의 건강을 회복시켜보려는 시도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원시주의는 현대문명 속에서 나약해진 예술에 새롭게 소생하는 힘의 근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흔히 음악이 시간 예술이라면, 그림은 공간예술이라고한다. 그리고 그림 속에 지속되는 시간의 대념이 도입되는 경우가 없지 않다. 핑거 페인팅 역시 손과 신체의 운동이 계속되어 화면위에서 시간을 보내야함으로 시간성이 중요한 요소가 아닐 수 없다. 작품을 제작하는 행위가 작품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하지는 않으므로 행동예술이라고는 할 수 없다. 잭슨 폴록이 화폭을 바닥에 깔고 작업을 진행하지만 드리핑과는 달리 시간의 지속은 단소적으로 이어진다. 부분적으로 또는 전체적으로 손가락들의 ms적은 화면을 뒤엎고, 그위에 다시 겹쳐지는 동안에 그림은 서서히 완성되어갈 것이다.


물론 실패하는 경우에 수정이 필요하겠지만 원칙적으로 일회적인 흔적으로 화면은 뒤덮여져 갈 것이다. 이 한번 지나가는 흔적은 직관의 원리 위에 손가락운동의 방향이 결정되어야 한다. 시시각각으로 선택하고 행동해야한다. 마치 안간이 눈부시게 살아가는 모습과도 같다. 인간실존의 상황과 흡사한 제작과저이 아닌가 싶다. 경우에 따라서는 일종의 신들린 상태 또는 무의식 상태에서 작업이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 구석구석을 모두 구도를 생각하며 손놀림을 조정할 수 는 없을 것이다. 무의식 상태에서 휘젓는 손가락운도은 자동주의적 운동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성의도가 아주 반영 안된 것도 아니다. 색면으로 나타난 색면분할같은 배려와 하얀 선으로 나타나는 구획선같은 토막선들이 여기저기 출현한다. 구성주의적 흔적으로 화면 전체에 긴장감을 주며 올 오버에서 오는 무기력증으로 부터 화폭을 살려내기 위해서일 것이다. 두서너개에서 네 다섯 개의 단층이 겹쳐서 형성화된 화면은 입체적인 구조를 이룬다. 앞서 잠깐 언급한 것처럼 투명한 중첨효과가 최종화면 위에 나타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색가해보고 싶은 것은 아크릴릭 순색물감으로 손가락들의 흔적을 기록한 화면이 물질 그 자체이며 그 이상 아무것도 - 정신도 예술도 - 아닌 것인다, 아니면 덮여져 있는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유물론적인 시각에서 본다면 물감의 층들로 덮여진 표면에 불과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그림들은 모든 사람의 시선과 마음에 놀라움을 주고 감동을 주기 때문에 물감은 예술의 영역으로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연금술적인 변화를 일으킨 것이다.


세계와 신(神)을 동일시하는 판테이즘 (만유신론)을 그림 위에 적용시켜 생각한다면, 화가의 정신이 모든 흔적과 일체가 되어 물질과 예술은 동일시 되어질 수 있을 것이다. 물감 이상의 그 무엇을 느끼게 하는 감동이 이 형태없는 그림과 함께 있으며, 그것이 바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예술이라는 것이리라. 유물론에서 시작하여 유심론으로 끝나는 세계, 또는 이원론 위에 선 세계라고 말한다면 크게 틀린 말인지? 생각해볼 가치가 이 작품들에게 있다고 본다.


《가나아트》1989년 11․12월호 정병관


박영남의 추상회화: 이성과 감성의 知性的 유희와 성찰


정영목 (미술사가, 서울대 교수)


I.박영남의 이번 개인전은 지금껏 유래하지 않은 한 가지 특이한 사항을 기지고 있다. 작가와 가나의 기획팀은 화가가 초등학교 시절--정확하게 50년 전--그린 그림들을 최근의 작품들과 함께 전시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아마도 동, 서양의 어떤 화가들의 전시에 내가 아는 한 이런 형태의 전시는 없었다.


일반적으로 두 가지의 측면이 있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그들의 학생시절 작품을 세상에 드러내기를 꺼린다. 지금을 있게 한 자신의 과거가 쑥스럽거나 부끄럽기도 하거니와, 습작 정도의 가벼운 ‘터치(touch)’들로서 작품으로서의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때문에 그것을 몇 십년간 간직하지도 않는다. 한편, 기록의 차원에서 아니면 성장기의 은밀한 감수성이 베어있는 ‘수집품(sentimental junk)'의 성격으로 학생시절의 작품을 보관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초등학교 시절의 작품을 근 50년 이상 보관하고 있는 작가는 극히 드물며, 그것을 세상에 공식적으로 전시하겠다고 생각한 화가는 더더욱 드물다. 드물다 못해 내가 아는 한 이런 개인전은 없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박영남의 이번 개인전은 역설적으로 특이하다. 그러나 화가의 초등학교 시절의 작품을 유심히 관찰하면, 그 특이함의 내부에 작가와 기획팀이 시도한 궁극적인 전시의 개념과 의미를 감지할 수 있다. 예컨대, 추상으로 일관되어온 그의 작업 여정에서 박영남은 그의 기질적, 양식적 뿌리들의 근간이 거슬러 올라가면 이미 그의 초등학교 시절에 형성되어 그때의 작품에 담겨져 있음을 발견한 것이다. 물론, 성장 후 작가가 되기 위하여, 또는 작가로서의 활동 중 그가 외부로부터 받은 ‘영향과 수용’의 관계가 일차적으로 좀더 직접적이며 구체적으로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도 나이 60을 바라보는 이 시점에서 작가로서의 자신과 자신의 작품에 관한 ‘정체성(identity)’을 이런 식으로 바라보는 것 또한 근원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한국 현대미술의 발자취에서 ‘추상/구상’, ‘동양/서양’, ‘영향/독창’ 등 이분법의 가치체계가 분명하고 획일적이었던 우리의 시대도 이제는 지나갔다. 동양과 서양의 구분이 무의미해졌듯, ‘추상’ 미술을 ‘서양의 영향’으로, 또는 ‘구상’의 상대적인 개념으로 읽어야할 의무도 이제는 사라졌다. 사람이 나이가 들수록 ‘회귀본능’을 찾아가듯, 우리의 현대미술도 이제는 그 뿌리를 외부보다는 내부로부터의 문제에서 그 기원을 찾아가려는 움직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자신의 최근 작품에 초등학교 시절의 작품을 반추해보는 박영남의 이번 개인전은 이러한 측면에서 더욱 그 값어치를 발휘한다.


II. 1956~1961년


이번에 전시되는 박영남의 초등학교 시절 작품 48점은 1956년에서 1961년 사이에 오일 파스텔, 수채화로 그린 풍경화, 정물화, 인물화와 콘테와 연필로 표현한 드로잉들이다. 색채의 선명도를 위시한 그 보존상태가 지금까지도 양호한 것은 전쟁 후의 열악한 경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고가의 재료들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미술에 대한 부모님의 후원이 어릴 적부터 남달랐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아직 재현의 단계에서 사물을 입체적으로 묘사하는 숙련의 나이는 아니지만, 대상을 관찰하고 그것을 화면에 나타내는 과정에서의 구축적인 태도가 대단히 돋보인다. 원근법을 적용하여 화면의 깊이를 만들지 않았지만, 마치 그 단계를 뛰어 넘은 세잔(Cezanné)의 정물화나 풍경화를 대하듯, 각 대상의 기본적인 골격을 파악하여 단순한 선과 색의 구조적인 결합으로 화면에 재배치한 자신감과 확신성이 돋보인다.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대상으로서 버려야 할 것들과 표현해야 할 것들을 주저하지 않고 선택하여, 단순한 선과 색의 기하학적 평면으로 과감하게 처리했다. 어린 박영남은 추상을 모르면서 이미 추상의 경지를 터득하고 있었다. 이것은 어린 박영남이 사물과 대상을 조형적인 구조로 파악할 줄 아는 눈썰미가 태생적으로 빼어난 결과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또한, 이러한 눈썰미가 그의 최근 추상작품들에 이르기까지 암묵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이어져 왔다고 보아야할 것이다.


몇 가지의 사례들을 직접 관찰해보자. 1957년 작가의 나이 8세에 그린 실내의 <누나의책상>(도.1)을 보자. 앉은뱅이 책상과 방석, 그 위에 놓인 원형의 탁자, 탁자 위의 녹색 병, 그리고 그 왼편 파랑색의 선과 그 외의 색 면들로 구성된 4단의 서랍장과 배경 등, 그리고자 한 대상들의 뚜렷한 기본골격과 채색의 조합이 매우 단순하면서도 구축적이다. 각 대상들의 조형적 절대 이미지를 잡아내는 능력과 그것을 한 화면 안에 과감하고 조화롭게 배치하는 순간적인 구성력이 뛰어남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순발력은 같은 시기에 그린 <집 앞 풍경>(도.2)에 더욱 확실하게 드러난다. 도시의 활기를 잡은 구조의 역동성과 그를 떠받치는 과감한 채색은 더욱 손의 확신성에 차있다. 특히, 화면의 왼편 위, 아래에 자리하여 전체 구조의 균형을 잡아주면서도 돌발적인 파랑 바탕의 노란 삼각형은 최근 흑백의 톤으로 무게감을 갖춘 1999년의 <하늘에 그린 풍경>(도.3)에 새로운 시대정신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 것 같은 조형심리학적 연관성마저 가지고 있다.


어릴 적이지만 선(line)을 운용하는 순발력에 있어서도 박영남은 지금처럼 탁월했다. 마치 수틴(Shaim Soutine)의 인물화를 보는 것 같은, 1957년의 <파란양복의 신사>(도.4)에서 어린 박영남은 신사가 입은 양복의 모습을 파랑 바탕에 열 댓 개의 압축된 순발력의 검정 선으로 처리했다. 인물의 핵심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선의 회화성을 살린 어린 박영남의 순발력은 지금도 연연히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1961년 그가 연필로 그린 <소>(도.5)는 가히 압권이라 할만하다. 최소한의 음영과 선의 필치만으로 소의 무게감과 중심을 이렇게 탄탄히 잡기란 매우 힘든 것인데, 12살 어린 나이의 작품에 그것이 보이니 회고적이지만 예사롭지 않다.


이후 중, 고등학교의 학창시절을 포함해 미술대학에의 진학을 결심할 때까지 박영남은 일체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즈음 그가 운용하는 추상적 선의 흐름은 회화적 순발력을 갖추었으면서도 무게를 갖고 어떠한 서사적 기운(氣運)마저 감돈다. 이러한 기운의 원천은 박영남의 유년시절에 이미 형성되어 있었다.


III. 함대정 화백(1920~1959)


박영남의 유년시절 한국의 현대미술은 격동의 시기였다. 전쟁 후 형식적인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추상의 물결은 전위(avant-garde)의 미명과 함께 대세로 자리 잡아 가기 시작했다. 어린 박영남이 현대미술의 이러한 동향을 알리 없었겠지만, 적어도 함대정 화백과의 숙명적인 인연으로 ‘반추상’이라 일컬을 수 있는 그의 미술경향이나 화가로서의 열정과 고뇌를 어깨너머로 보고 자란 기억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공간」, 1992년 6월호, 49쪽).


동란 후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 함 화백은 박영남 부친의 배려로 그의 집에 기거하며 그림을 그렸다. 일본 유학을 거친 당대의 지식인으로 뒤늦게 독학으로 화가의 길을 걸은 함 화백은 평안북도 박천 출신이었다. 박영남의 부친 박기훈 선생은 고향후배인 함대정 화백을 유난히 좋아하고 그의 작품을 사랑하였으며 순수한 마음으로 말없이 그를 후원하여 함화백은 1957년 도불전을 갖고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게 되었다. 1951년 프랑스로 건너간 이성자 화백을 최근에 만나, 당시 파리에서의 함대정에 관한 기억을 물어보았다. 남관, 김흥수 등 당시 파리에 체류하던 한국 화가들의 에피소드를 들었는데, 함대정은 점잖고 조용한 성격으로 어디에서 만나도 티가 나지 않았단다. 1959년 귀국전(歸國展)을 개최하고, 그해 10월 39세의 나이로 함대정은 세상을 하직했다. 이중섭처럼 요절한 셈이다. 그러나 죽어서도 이중섭처럼 세인의 관심을 끌지도 못했다.


함대정 화백의 전체 작품을 파악하지는 않았으나 그의 작품은 이중섭 보다 나으면 나았지 결코 뒤지지 않는다. 특히, 형식적인 측면에서 그의 ‘반추상’적 완결성은 당대 어느 누구의 작품보다 구조의 튼튼함과 밀도의 치밀함이 뛰어난 작가였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그의 1950년대 작품, <가족>(도.6)을 보자. 자칫 형식의 산만함으로 흐를 수 있는 표현주의적 격렬함이 자유분방하지만 한편, 이성과 감성의 적절한 배합에 의하여 구사된 검은 외곽선들은 화면을 밀도 있게 구축적으로 분할하는 효과와 인물의 추상성을 강조하기 위한 왜곡의 효과를 동시에 발휘하고 있다.


갓 태어난 오리의 학습효과가 시각적 이미지의 첫 인상을 따라가듯, 어린 박영남은 함대정 화백이 그리는 이런 형식의 그림을 ‘어깨너머’로 보았을 것이다. 즉, 지식의 축적과 그에 따른 이성적 판단으로 ‘추상’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새끼 오리의 학습효과처럼 그림은 곧 ‘추상’으로 어린 박영남의 뇌리에 각인되었을 것이다. 앞에서 살펴보았던 어린 박영남의 그림에서 대상을 압축, 배치하여 구축적인 화면으로 이끌어가는 눈썰미 역시 어깨너머로 본 함대정 화백의 작업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먼 훗날 그가 성인의 화가가 되었어도 잠재된 무의식의 ‘추상’은 기질적으로 혹은 태생적으로 그를 추상세계에 머물러있게 한 근본적인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아마도 파리 유학 시기나 그 이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함대정 화백의 <악사>(도.7)는 그가 구사한 형식의 절정 단계에 오른 작품이다. 큐비즘적 잔재가 베어있던 ‘반추상’의 이미지는 어느덧 사라지고, 인물은 그 형태를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해체되었다. 거기에 표현주의적 격렬함과 분방함은 그 도를 넘어, 즉흥적인 순발력의 조형적 판단들로 채워진 잘고 굵은 선들과 무게감 있게 전해오는 대비의 채색이 서로 어우러져 화면의 역동성과 짜임새의 치밀함을 동시에 발산한다. 시대와 지향하는 바가 다를 수도 있겠지만 함대정 화백의 조형적 기질과 작품의 성격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이어져” 박영남에게 이식되었다. ‘이식’이라는 표현이 적절한지는 의문이나 적어도 두 화가의 작품이 발산하는 조형적 공통분모를 그냥 우연으로 가볍게 넘길 사안은 아니다.


IV. 손으로, 선과 색의 형태로, 그리고 서사적 무게감으로


박영남의 추상회화를 오늘에 있게 한 그 핵심은 선과 색의 변주에 따른 다양한 형태를 붓 대신 손으로 다루는 그의 조형적 능력일 것이다. 그는 자신의 손으로 직접 긋거나 바르는 등의 행위의 몸짓을 화면에 강조하거나 즐긴다. ‘즐긴다’는 표현이 꼭 ‘유희적’인 것만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캔버스에 직접 닿는 자신의 손맛을 더욱 신뢰한다는 뜻일 것이다. 서양미술사에서 손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시점은 꽤 오래 되었다. 르네상스 시기 이 ‘손의 확신성(sureness of hands)'에 의한 좀더 활달한 회화적 색채를 구사하고자 티치아노(Tiziano)도 이미 손으로 그림을 그렸다. 지금은 추상표현주의(Abstract Expressionism)나 앵포르멜(Informal) 이후 세계의 많은 작가들이 자신의 습관과 취향, 혹은 개념에 따라 손으로 그리는 것을 더욱 선호하기도 한다.


이탈리아의 현대화가 마리아니(Mario Mariani)의 작품 중에 <Hands obey Intellects>라는 그림이 있다. 제목 그대로 화가의 “손은 지성을 따른다”는 의미이다. 이 의미는 선과 색의 추상적 즉흥성과 우연성을 아무리 강조하더라도 손을 움직이는 두뇌의 지시체제가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즉, 의도 없이 그려진 그림이란 있을 수 없다는 뜻이다. 감성적인 색채의 농후함과 선의 격렬함이 아무리 즉흥적이더라도 그것을 제어하는 이성적 장치가 대부분의 그림에는 있기 마련이다. 박영남의 추상도 그렇다. 얼핏 보기에는 대단히 감성적인 행위의 몸짓을 느낄 정도로 거칠고 원초적인 것 같지만, 그 내부에는 엄격하게 통제된 구조적 판단들이 화면의 근간을 형성하고 있다. 때문에 그의 추상은 순간순간의 자위적인 감성을 분출한 표현의 결과이기보다는, 선과 색의 이성적, 감성적 조합으로 형성된 조형의 ‘지성적 유희’에 더욱 가깝다.


박영남은 그가 즐겨 사용하는 두 폭, 또는 세 폭의 대형 캔버스를 대지에 비유하기도 한다. 말하자면, 그 대지는 삼각형, 사각형, 수평선, 수직선, 대각선 등 자연을 구조적 조형요소로 파악, 표현한 것이고, 거기에 발려지는 색채 또한 “자연의 또 다른 형태”로 환원한 것이니, 그 결과로 만들어진 이 “제3의 현장(작품)”을 풍경이라 부를 뿐 실제로 그것은 언어적 상상력과는 상관이 없다. 때문에 추상적이다. 추상은 추상일 뿐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언어적 습관으로 추상을 읽으려 애쓴다. 또한, 거기에 애시 당초 존재하지도 않는 의미를 부여하려 온갖 문학적 상상력을 갖다 붙여 과대포장을 한다. 그래야 미술 작품이 비로소 지성적으로 둔갑할 수 있다고 믿는다. 심지어 추상을 신봉하는 화가들마저 자신의 작품이 문학과 철학의 심오한 사상으로 풀이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내가 말하는 추상의 ‘지성적’ 유희나 성찰은 이런 것이 아니다. 언어가 지성을 나타내는 기표와 기의이듯, 순수한 시각적 형태도 그 스스로 지성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언어로 지식의 축적을 역사와 함께 이룩해내듯, 순수한 시각적 형태도 그 스스로의 역사와 함께 언어의 도움 없이 지식으로 축적될 수 있다는 논리이다. 나는 순수하게 시각의 지식으로 축적된 지성적 유희나 성찰을 박영남의 추상에서 보고 느낀다. 그가 구사하는 갖가지의 선과 색채의 변주는 각 시기의 이유 있는 변화와 함께 그들 스스로의 개념적인 질서(order)를 유지하며 성장해왔다. 젊을 적, 유희적 손끝의 지성에서 이제는 성찰적 지성의 태도로 옮겨왔음을 나는 그가 구사하는 최근 작품의 시각적 형태들에서 느꼈다. 이러한 시각적 형태들의 개념적인 질서가 역사를 가질 때 나는 그것을 ‘지성(知性)으로 판단한다.


작품의 크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번에 전시되는 박영남의 추상은 서사적 무게감으로 관객을 압도하는 미학적 숭고함마저 느끼게 한다. 나는 이것을 그의 작품이 이제 성찰적 지성의 태도로 옮겨왔다고 판단한 것이다. 과거의 서정적, 혹은 시적인 느낌의 자율성이 강했던 작품들과 달리, 이제 그가 구사하는 선과 색채의 형태들은 그 각각의 형태들이 지닌 내재율의 역사를 너그럽게 품고 있는 듯, 한 편의 장엄한 서사시를 일시에 한 눈으로 읽은 느낌이다. 박영남의 추상은 이제 조형의 세계를 관조하는 무게감마저 갖추었다. 그가 하늘에 무수히 뿌려 놓은 삼각형들은 이제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 이성과 감성의 균형을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 자신들의 미래를 책임질 차례이다.


박영남의 작품세계


임영방


박영남의 회화작품이 보이는 진하고 두터운 물감의 흔적은 자유분방한 선과 함께 강하고 거칠은 움직임을 발산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관람자로 하여금 잊혀진 먼 옛날의 즐거웠던 어린시절을 회상케하고, 순박한 동심의 세계로 이끌어준다. 그 이유는 우리가 어린시절 마음대로 칠하고 그리고 그었던 발산적인 자유스러운 놀이를 박영남의 작품이 연상시켜주기 때문이다.

사실 그의 작품은 어느 관념을 물감으로 표출한 것도 아니고, 물감의 음악적인 회화성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의 말대로 아무 예비적인 준비없이, 어린 시절에 마음대로 그리고 칠하며 놀던 습관의 연장으로 계속 오늘도 그 놀이를 하고있는 것이 박영남의 작품활동이다.


붓으로 물감을 칠하지 않고, 물감통을 눕힌 캔버스에 드러붓고 손으로 문질러가며 색의 맛을 익히고 있다. 그렇기에 그는 작업을 하는데 있어서 예술적인 표현 내지는 활동이라는 의식을 갖지 않는다고 한다. 이와 같이 솔직한 태도는 편안하고 자유스럽고 순수한 작업을 가능케하고, 한편 억압적이고 의도적인 창작활동을 멀리하게 한다. 모든 유형, 모든 형식, 모든 개념을 멀리한 상태에서 그냥 습관적으로 작업에 임한다고 그는 말한다. 일단 일을 시작해보고 그 상황에 따라 무엇을 해야하고 어떻게 계속해야 하는가를 감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흔히 예술가들이 작업에 앞서 창조적인 구상을 한다는 것에 상반한다. 여기서 생각나는 것은 현대미학의 대가인 ‘에티넨느 수리오’가 그의 “실천적 미학에서 선험적인 예술미”를 주장하면서, 예술의 성립은 우선 무엇보다도 실천을 전제해야하며ㅡ 또한 그 예술성은 모든 사람에 공감되는 즐거운 놀이의 맛을 찾아내는 게 있다고 한 실천 우선의 예술미의 민주주의라는 학설이다.


박영남의 작품이 이러한 상황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지극히 순수한 성격을 지니고 또 그것은 유아적인 소박함과 청순함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성격의 그의 예술이 ‘수리오’가 주장한 모든 사람에 공감되는 즐거운 놀이의 맛이라 할 수 있다.박영남의 말대로 작업에 이렇듯 열중해 있다가, 그만 멈추어야겠다는 느낌에 따라 작품이 끝난다고 한다. 따라서 작품의 완성이라는 개념 또한 흔히 말하는 완성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선험적인 어느 미적 판단에 따르게 된다는 이야기이다.그렇기에 박영남의 작품을 지적인 접근 및 이해의 대상으로 삼기보다도, 자유분방한 유아적인 심리상태나 여하한 어느 개념을 멀리한 전신 상태에서 교감해야할 것이다. 많은 유명한 사람들이 예술을 미적 정서 놀이라고 보았던 사실이 박영남의 예술성을 실감나게 연관시킨다. 그의 작품은 벌거벗은 상태를 우리에게 요구한다. 이러한 요구는 그의 작품이 그만큼 순수하다는 뜻이다.


전시된 작품은 손으로 물감을 바르고, 문지르고, 손톱과 물감튜브 등을 이용하여 선을 그어, 모든 제작형식이 무시된 상태에서 이루어진다. 박영남의 작업은 글자 그대로 모든 형식적인 표현의 구애에서 이탈한 상태를 보며, 이 점이 이색적인 우연성을 작품에 특징을 준다.붙이기, 긁어내기, 떼어내기, 바르기, 칠하기, 그어내기 등등, 이 모든 활동작업이 절차 순서 내지는 미적 규범없이 이루어지고 또 그 어느 순간 이상한 뜻밖의 결과가 나타나 보일때, 이러한 작업놀이를 멈춘다. 오늘의 예술관이 앞서 언급한 학자 ‘수리오’의 말대로 만들어내는 예술미가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라 주장한다면 박영남의 예술성을 이에 연관짓게 된다. 가장 소박하고, 솔직하며, 자연스럽고, 자유스러운 정서적인 놀이표현을 박영남이 이 전시에서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맑고 순박한 눈을 갖고 작품을 감상해야할 것이다.